[로앤피플] 법조계 'IT 길잡이' 강민구 "법조 AI에 판결문 공개 필수…재판지연 해결 열쇠"
관리자
2024-03-07 10:29 Views 381
"현재 AI의 수준은 단순히 사건 당사자들이 낸 서면을 요약해주고 판례와 법령, 문헌을 찾아주는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변호사가 의뢰인과 대화한 내용을 법률 문장으로 만들어 주거나, 소장까지 자동으로 만들어 줍니다. 청구원인이나 사건 당사자의 주장을 요약하고 관련 법리, 판결도 정리해줍니다. 법조 AI가 재판지연 문제를 획기적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법원을 비롯한 법조계 내 AI 등 IT기술의 중요성을 전파하며 'IT 판사'로 불린 강민구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사법연수원 14기)는 지난달 29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선릉역 인근 회의실에서 진행된 아주로앤피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법조계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재판지연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AI를 제시했다. 그는 "법조 AI가 '자동차'라면 판결문 데이터는 '휘발유'"라며 법조 AI 발전을 위해서는 판결문 전면 공개가 필수 요소라고 강조했다.
강 전 부장판사는 "미국·중국 등에서는 이미 실명 판결문 공개가 원칙적으로 시행 중인데 우리나라는 개인정보보호법 등이 막고 있어 법원에서 판결문을 공개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태"라며 "국회에서 관련 입법 개정이나 판결문 공개에 대한 법률을 제정해야 하는데 관련 법안이 발의가 많이 됐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국회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1985년 '더미터미널'로 컴퓨팅에 눈 떠…법조계 내 IT기술 중요성 전파
강 전 부장판사가 60대의 나이에도 그 누구보다 IT기술에 먼저 눈을 뜨게 된 시작점은 198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그는 육군사관학교 교수부 교수로 근무하게 됐는데 그곳에서 '더미터미널'을 처음 접하게 됐다. 더미터미널은 데이터의 입력과 출력 기능만 하는 흑백 모니터와 키보드로만 이뤄진 단말기다. 더미터미널을 사용하기 위해 그는 3년간 컴퓨터 프로그램에 대한 독학을 시작했다. 이어 1988년 법관 임용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XT급 PC로 컴퓨팅 세계에 빠져들었다.
강 전 부장판사는 "육사 교수로 부임했을 때가 20대 후반이었는데 더미터미널을 처음 본 순 간 마치 하늘에서 신이 강림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며 "더미터미널을 시작으로 3년 동안 파스칼 같은 코딩 언어도 배웠다"고 회상했다. 이어 "법관 임용된 시절에는 만년필로 판결 초고를 작성하던 시절이었는데, PC를 사비로 구매해 판결문을 작성하고 계산이 필요한 호봉승급 손해배상 사건 처리 시간을 대폭 단축했다"며 "이를 본 동료 법관들도 줄 지어 PC를 구매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에도 꾸준히 IT 관련 외신 기사들을 구글알리미를 통해 접해 보며 관련 정보를 업데이트 했다. 그러던 그는 2022년 11월 처음으로 챗GPT 3.5 버전이 세상에 공개되자 또다시 IT기술의 발전력에 놀라움을 느꼈다. 강 전 부장판사는 그때부터 활발하게 법관, 변호사 등을 상대로 강연을 하면서 AI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자 했다.
강 전 부장판사는 "챗GPT가 초창기 공개된 때에 비해 발전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빨라 지난해 중반기 때는 '한국 법조를 바꿀 무기가 되겠구나'를 확신했다"며 "서울고법·중앙지법 판사들과 수원·대구ㆍ부산 법원 판사, 변호사들을 대상으로 꾸준히 강연을 하면서 이 무기를 다들 사용할 수 있도록 가이드 역할을 해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강연을 들은 분들의 피드백 중 '60대 법관도 저렇게 호기심, 탐구심을 갖고 신기술을 품에 안는데 우리는 뭐하고 있었나 하는 자괴심이 들었다'는 말이 가장 와닿았다. 그들의 인생에 디지털 상록수를 하나 심었다는 느낌, 인생의 길을 바꿨다는 생각에 뿌듯함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업무 혁신 이끌 AI, 법조 사무 대체…변호사는 송무 외 시장 뚫어야
강 부장판사는 법조에도 AI가 본격적으로 도입된다면 큰 변화가 올 것이라 전망했다. 그는 "AI가 도입되면 법관은 판결문 이유 부분 작성에 보조도구가 될 것이고, 검사도 공소장 작성 등에 도움이 된다. 변호사도 소장, 준비서면, 답변서, 변론요지서 작성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며 "물론 현 단계에서는 AI가 결론 도출이나 사실관계 재구성 등에 직접적으로 개입되기는 힘들고 법률문장 요약, 번역, 관련 법령·판례 검색·정리 등에 주로 사용될 것인데, 그 정도만 해도 엄청난 업무 혁신이 발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만 그는 "법조인 업무 자체가 논리로 이뤄지고 있어 타직군보다 더 빨리 AI에 의해 대체되는 분야에 해당하는데, 외국 자료에 의하면 법조 사무 41%가 수년 후에는 AI에 의해 대체된다고 한다"며 "젋은 변호사들은 더이상 송무시장에서 살아남기 힘들 수 있어 자문 등 송무 외 시장을 뚫어야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외국과 비교했을 때 현재 우리나라 법조 IT기술 발전의 속도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내비쳤다. 강 전 부장판사는 법원이 AI를 개혁의 틀로 삼겠다는 지침을 발표한 만큼 보다 속도를 높여 진행했으면 하는 바람도 전했다.
강 전 부장판사는 "한국 사법정보화는 초기부터 열정있는 소수 법관들의 주도 하에 SI업체 등과 잘 협업해 전 세계 톱 3위 안에 드는 위치까지 갔다가 근래 정체된 모습"이라며 "과거 '사법한류'라는 이름으로 베트남 법원 등에서 한국 판사들이 도움도 주기도 했지만, 지금은 한국 사법시스템을 벤치 마킹한 중국에게 추월당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올해 가을 차세대 사법정보화시스템이 법원 내부에 개통되고 내년에 내부용 AI가 접목되면 다시 세계 최상위권 사법부가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며 "이를 위해 정부도 법조 AI의 중요성에 대해 각성하고 관련 예산을 늘려줄 필요는 있다"고 강조했다.
퇴임 후에도 강연·교육 이어가…"디지털·AI 정보격차 현상 완화에 기여"
강 전 부장판사는 "사회나 조직에서 지위가 높을수록 자신이 할 수 있거나 해야 할 일도 스텝이나 하부조직에 지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퇴직 후 이들의 일을 도와 줄 스텝이 없으면 디지털·AI 대응 능력이 거의 0에 수렴한다는 현실이 매우 안타깝다"며 "제가 AI 기술 전공자는 아니기 때문에 신기술 개발은 힘들지만, 꾸준히 강연·교육을 통해 AI 등 IT기술 사용·활용·확산에 이바지 해 퇴직한 중·노년층의 서러움을 줄여주고 젊은 청년들에게도 희망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